2012년 04월 27일
통합종단
- “한국불교, 종헌정신 구현 못해 현 위기 자초”
- 불교사회硏, 25일 ‘통합종단 출범 50주년 세미나’ 개최
“말뿐인 사부대중…포교공동화 불구 교구제 고수” 지적- 2012.04.26 17:41 입력김현태 기자 meopit@beopbo.com 발행호수 : 1145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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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불교가 위기에 처해 있다는 말이 공공연히 회자되는 것은 현재 종단의 모습이 종헌이 제시하고 있는 이념과 정신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종헌의 이념과 정신에 따라 종단의 법령과 종책이 입안되고 제도와 운영시스템이 구축된다면 불교는 사회적으로 가장 존경받는 종교가 될 것이다.”(중앙종회의원 법안 스님)
“1962년 통합종단 출범과 함께 시작된 현 교구본사제는 일제강점기 31본사제를 기반으로 성립, 태생적으로 전법보다는 행정중심의 조직체계이며 문중중심의 사고와 정실인사, 지역사회와의 소통부재, 본사주지와 정치인의 유착 등을 고착화하는 주요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에 교구 획정 등에 대한 획기적인 변화가 요구된다.”(총무부장 영담 스님)
통합종단 조계종 출범 50주년을 맞이해 종헌종법 및 교구제도의 형성과 시대적 변천과정을 돌이켜 미래지향적 발전방향을 모색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조계종 불교사회연구소(소장 법안 스님)가 4월25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국제회의장에서 개최한 ‘통합종단 출범 50주년 기념세미나’에서는 현재 한국불교의 위기를 사회적 변화에 발맞추지 못하고 정치적 이해관계에 매몰돼 종헌의 이념과 정신을 제대로 구현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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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종헌의 형성과 변천, 그리고 과제’를 주제로 발제한 중앙종회 종헌종법제개정특별위원장 법안 스님은 “통합종단 출범 50주년, 종헌 제정 50주년을 맞이해 21세기 인류사회가 요구하는 한국불교의 이념과 가치, 그리고 역할을 어떻게 구현할 것이며, 종헌이 지향하는 이념과 원리에 기반한 종단 운영과 통합을 어떻게 이룰 것인지 그 방안을 모색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스님은 “최초 종헌은 법통 계승을 통한 한국불교의 정통종단을 선언하면서 회통불교, 대승불교, 종도주권의 이념과 종도 상을 제시했다. 이후 종단 내적 상황과 시대적 상황을 반영해 25차에 걸쳐 개정됐다”며 “그럼에도 현재 한국불교는 전통적 기반의 몰락 속에 생존기반 자체가 급속히 쇠락하는 역사상 유례 없는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위기의 원인에 대해 스님은 △정치 과잉 및 비구 중심의 종단 운영 △승가의 사회적 리더 부재와 신뢰 상실 △출가자 감소 및 자질 문제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는 종무행정 △중앙과 지방이 따로 움직이는 현실 △정교유착 등을 꼽았다. 이에 따른 해결방안으로 종헌의 이념과 정신의 구현을 강조하며, 최우선 과제로 사부대중 공동체 실현을 제시했다.
스님은 “종헌 제정 이래 조계종은 비구와 비구니, 우바이와 우바새로 구성된다고 말하고 있지만 실상은 비구 중심의 운영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능력의 차이에 따라 역할이 주어지는 현대사회의 흐름을 받아들여 출가여부와 성별이 아닌 역할과 자질로서 그 지위가 주어지는 것이 종헌 정신에 부합된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정치 중심의 종단 운영의 폐해를 극복하고, 지역불교 활성화를 위해 종권의 교구이양을 주창하기도 했다. 법안 스님은 “종단의 종권이 중앙에 집중되면서 총무원을 비롯한 중앙종무기관의 견제와 균형을 명분으로 중앙종회가 종책모임간 이해 충돌의 장으로 변질됐다”며 “중앙종무기관에 집중된 권한을 교구로 이양해 종권을 둘러싼 중앙정치 형태를 약화시키고, 교구자치를 강화함으로써 지역불교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덧붙여 지금까지 사문화되어 있는 교구종회의 기능을 실질적으로 강화해 본사주지의 전횡을 견제하고 감시할 수 있도록 기능을 보완할 것을 주문했다.
이밖에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디지털 사회에서의 사회적 리더십을 강화하기 위해 조계종이 추구해야 하는 사회적 역할에 대한 내용을 종헌에 담아낼 것도 함께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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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무부장 영담 스님은 ‘조계종 교구제도와 사찰관리체계의 개선방안’을 주제로 한 발제에서 교구행정력 강화 및 도심포교 역량 강화를 위한 대도시를 중심으로 한 지역별 교구 재획정과 교구 자치제 강화를 제시했다. 영담 스님은 “교구제도와 사찰관리체계를 시대에 맞게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문제제기는 예외 없이 한국불교의 위기론이 그 바탕에 있다”며 “한국불교의 위기론은 한국불교가 사회적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뒤처져 있으며, 이로 인해 타종교보다 성장에서도 뒤진다는 것이 내용의 핵심”이라고 역설했다.
스님은 이어 “현행 교구본사는 대부분 산중에 위치해 관할구역이 불분명할 뿐만 아니라 수도권을 비롯한 인천, 광주, 대전 등 대도시에서는 포교공동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며 “교구 행정력과 교구 자치제, 도심포교 역량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교구본사제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교구본사제 개선 등 종단 발전을 위한 개혁은 양보와 타협이 전제돼야 하며 이는 기득권을 내려놓을 때 실현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스님은 “중앙종무기관의 권한과 기능을 교구본사에 대폭 위임 또는 이양하는 것을 통해 교구제도와 사찰관리체계 개선의 물꼬를 틀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중앙종무기관의 권한과 기능 이양은 교구본사 입장에서 자신의 기득권을 양보하는데 매력적인 조건이자 명분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불교사회연구소는 오는 7월5일 오후 2시 ‘조계종의 활동과 전망’을 주제로 통합종단 출범 50주년 기념 제2차 세미나를 개최한다. 2차 세미나에서는 ‘조계종의 활동과 역할’, ‘현대 한국의 다종교상황에서 조계종의 역할과 전망’, ‘대한불교조계종의 이념과 21세기적 과제’ 등 지난 50년간 조계종의 분야별 활동을 확인하고 이를 토대로 오늘날 한국사회에서의 조계종의 역할과 과제를 모색하는 자리로 진행된다.
김현태 기자 meopit@beopbo.com
- ① 통합종단 출범 배경과 한계
- 비구·대처간 갈등으로 촉발 공권력 빌린 ‘미완의 통합’
- 2012.04.09 15:47 입력권오영 기자 oyemc@beopbo.com 발행호수 : 1141 호 / 발행일 : 2012-04-01
한국불교 전통성 계승
불교 현대화 토대마련
대처측 태고종 창종에
끝내 분종으로 이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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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한국불교의 정통성을 계승하며 출범한 통합종단 대한불교조계종이 4월11일 50주년을 맞는다. 비구·대처승 간의 긴 갈등과 대립을 봉합하고 출범한 통합종단은 이후 반세기 동안 도제양성과 포교, 역경 등의 분야에서 괄목할만한 성과를 내면서 한국불교의 현대화를 견인해왔다. 그러나 통합종단은 출범과정에서 적지 않은 시련을 겪었고, 이후 대처승들의 반발로 분종이라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또 통합종단이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도 적지 않다. 이에 본지는 통합종단 출범 50주년을 맞아 성과와 향후 과제를 점검한다. 편집자
통합종단 출범은 일제 식민지과정에서 나타난 왜색불교의 잔재를 청산하겠다는 비구 측과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대처승간의 깊은 갈등에서 촉발됐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한국불교는 일본불교의 대처식육을 모방, 처자식을 거느린 대처승들이 승단의 주류를 형성했다. 당시 승려들의 세속화는 승단의 혼란과 비구승들의 적지 않은 반발을 불러왔다. 급기야 한국불교의 정통성을 회복하려는 비구승들의 자정 노력들이 곳곳에서 진행됐다. 특히 1947년 만암 스님을 중심으로 진행된 고불총림의 자정 쇄신안은 불교정화운동의 기본 골격이 됐다. 즉 대처승의 존재를 인정하고 비구승을 정법중, 대처승을 호법중으로 나눠 포교와 교육 등 수행승들을 지원하는 일에 종사토록 했다. 또 대처승은 상좌를 두지 못하도록 해 점진적이고 평화적인 방법으로 자정을 해 나가겠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런 불교계의 평화적 자정 노력은 1954년 “대처승들은 절에서 축출돼야 한다”는 이승만 대통령의 느닷없는 유시발표로 한 순간에 수포로 돌아갔다. 만암 스님의 점진적 자정 운동에 반발한 일부 비구승들이 이승만 대통령의 유시를 계기로 공권력의 힘을 빌린 정화운동을 진행하면서 곳곳에서 적지 않은 문제가 터져 나왔다. 일제 잔재를 청산한다는 미명 아래 일부 비구승들은 대처승들을 몰아내기 위해 폭력배까지 동원, 유혈사태가 발생하는가하면 수많은 송사가 진행되면서 막대한 삼보정재가 유실됐다. 이런 비구·대처승간의 갈등의 골은 이승만 정권이 물러나고 1961년 5·16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박정희 군부정권에 이르기까지 좀처럼 해소되지 않았다.
비구·대처승간의 갈등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비화되자 박정희 정권은 양측이 진행하고 있는 모든 송사를 중지하도록 지시하고, 불교재건위원회를 구성해 사태 해결을 촉구했다. 특히 박정희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은 1962년 1월12일 “불교계가 분쟁을 자율적으로 해결할 기회를 부여하겠지만 만약 이 같은 분쟁사태가 계속된다면 묵과하지 않겠다”고 경고성 담화문을 발표했다. 그러자 좀처럼 해결점을 찾지 못하던 양측의 대립은 급격히 봉합국면에 접어들었다. 2월22일 양측은 각각 15명씩 불교재건비상종회를 구성, 새 종헌과 종명·종지 등 제반사항을 합의하고 통합종단 출범의 기틀을 마련했다.
그리곤 4월11일 양측은 종명을 대한불교조계종이라고 하고 신라 도의국사를 개창조로, 고려 보조국사를 중천조로, 태고 보우국사를 종조로 명시한 종헌을 발표하고 역사적인 통합종단을 출범시켰다. 또 종정에는 비구 측의 효봉 스님을 총무원장에는 대처 측의 석진 스님을 선출하고 양측이 동일하게 간부를 맡아 합리적인 종단 운영을 선언했다. 이로써 8년간 지난하게 진행돼 온 비구·대처승간의 갈등은 봉합되고 한국불교의 전통성을 계승한 종단이 비로소 출범하게 됐다.
그러나 통합종단 출범에 따라 불교재건비상종회가 해산되고 새로운 종회가 구성되는 과정에서 비구 측의 종회의원 수가 전체 50석 가운데 32석을 차지하면서 양측은 불과 출범 4개월 만에 또다시 파국을 맞았다. 대처 측은 즉각 통합종단 이전으로 환원할 것을 선언하고 서대문에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을 설립했으며, 이후 긴 법정 다툼을 이어갔다. 한때 화동위원회를 구성, 화해를 위한 노력을 진행하기도 했지만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양측의 대립은 끝내 합의점을 찾을 수 없었다. 이후 1970년 대처승들이 한국불교태고종을 창종, 조계종에서 분종하면서 16년간 진행해 온 비구·대처승간의 갈등은 막을 내렸다.
이처럼 수많은 역경과 상처 속에 출범한 통합종단은 한국불교 근현대사에서 큰 전환점이 되기에 충분했다. 우선 일제시대 단절된 한국불교의 정통성을 복원하고 불교의 현대화를 위한 토대를 다지는 계기가 됐다. 특히 통합종단이 내건 도제양성과 포교, 역경 등 3대 지표는 수행승 중심의 승단재건과 일제 식민지 불교를 극복하기 위한 원동력이 됐다는 평가가 많다.
그러나 불교계 내부 분쟁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공권력의 힘을 빌려 만들어진 통합종단은 출범 당시부터 적지 않은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특히 군사정권의 반강제적 중재로 진행된 비구·대처승간의 어색한 화해는 통합종단 출범 4개월 만에 파국을 맞았고, 이후 오랜 법정 다툼 끝에 대처측이 1970년 태고종을 설립, 끝내 분종을 선택함으로써 ‘미완의 통합’이라는 한계를 드러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권오영 기자 oyemc@beopbo.com
- ② 통합종단 50년이 이룬 성과
- 일제치하 왜색 불교 청산 종단 자주화·전통성 계승
- 2012.04.16 14:33 입력권오영 기자 oyemc@beopbo.com 발행호수 : 1142 호 / 발행일 : 2012-04-18
통합종단 출범 50주년 성과와 과제
2001년 한글대장경 318권 완간
기본교육의무화…교육과정 정비
복지·NGO 등 대사회 참여 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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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구·대처승간의 오랜 갈등을 해소하고 1962년 출범한 통합종단 대한불교조계종은 일제강점기에 나타난 왜색불교의 잔재 청산과 종단 자주화, 한국불교 전통성 계승을 위한 토대를 다졌다. 특히 통합종단이 출범과 함께 내세운 도제양성과 포교, 역경이라는 3대 목표는 이후 반세기를 거치는 동안 각 분야에서 눈부신 성과를 내면서 전근대적인 모습에 머물러 있던 한국불교가 새롭게 도약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통합종단이 내세운 3대 목표 가운데 가장 역점을 둔 분야는 역경 불사였다. 역경은 부처님 가르침을 그 시대에 맞는 보편적 언어로 바꾸는 것으로, 불교에 대한 바른 이해와 신행을 위해서는 반드시 진행돼야 할 시급한 과제였다. 이를 위해 통합종단은 1963년 2월 역경위원회령을 공포하고, 이듬해 동국대에 동국역경원을 출범시켰다.
초대 원장 운허 스님을 중심으로 난해한 한문으로 된 수많은 경전을 한글로 번역하는 대작불사를 시작한 동국역경원은 1965년 6월 ‘잡아함경’을 처음 발간한 데 이어 팔리어로 된 경전과 고승들의 언행록을 차례로 출판했다. 또 동국역경원은 1975년 8만여 장에 이르는 ‘고려대장경’에 수록된 경전들을 모두 한글화하기로 하고 동국대에 ‘고려대장경영인본완간추진위원회’를 구성, 한글대장경 발간을 추진했다. 그리곤 2001년 4월 동국역경원은 출범 37년 만에 총 318권에 달하는 한글대장경을 완간했다. 이는 현존하는 부처님 가르침을 모두 살아 있는 우리의 글로 다시 태어나게 한 것으로 인류문화사 측면에서도 놀라운 성과로 평가됐다.
통합종단은 또 체계적인 교육제도 마련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이는 현대적 교육제도를 도입, 체계적인 교육을 통해 시대가 요구하는 도제를 양성한다는 취지였지만, 그 내면에는비구·대처승간의 갈등 과정에서 대규모로 양성된 스님들에 대한 재교육 문제가 당면과제로 자리 잡고 있었다. 실제 1954년 정화운동이 본격화 될 당시 500~600여명에 불과하던 비구승들이 1962년 통합종단 출범 당시 10배 이상 늘었고, 이들의 대부분은 스님으로서 갖춰야 할 기본적인 교육조차 받지 못한 채 종단의 구성원으로 포함됐다. 이로 인해 종단 안팎에서 승풍 실추 사건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고, 종단 구성원에 대한 자질 향상과 정체성 함양을 위한 교육 사업이 절실한 과제로 떠올랐다.
이에 따라 통합종단은 1962년 12월 처음으로 교육법을 제정, 종단 교육제도에 대한 기틀을 다졌고, 1964년 기존 강원은 존치하되 동국대에 종비생 제도를 도입해 전통과 현대식 교육의 이원화를 추진했다. 또 1967년 총림법을 제정, 해인총림과 조계총림이 개설한 데 이어 각 교구본사를 중심으로 전통강원들이 속속 복원되면서 승가교육이 활성화됐다. 그러나 당시 복원된 전통강원의 대부분은 학제가 산발적이고 무계획하게 편성되는가 하면 강원보다는 선원을 선호하는 풍토 탓에 전통강원 교육은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런 까닭에 종단 안팎에서는 단일화된 교육목표와 체계 속에서 종단 목적에 부합하는 인재 양성을 담당할 통합교육기관 설립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조성됐고, 그 결과 1989년 학교법인 승가학원을 설립, 1990년 교육부로부터 인가 받은 4년제 대학인 중앙승가대학교를 탄생시켰다.
조계종 교육제도의 대대적인 혁신은 1994년 이른바 개혁종단이 출범하면서부터다. 1995년 1월 교육원을 별원으로 설립한 조계종은 이후 교육법을 정비, 기본교육을 의무화했을 뿐 아니라 기초(행자교육)-기본(강원 혹은 동국대, 중앙승가대 교육)-전문(학림 등 대학원) 과정 등 종단의 교육과정을 체계적으로 정비해 현대적 교육시스템 구축을 위한 토대를 마련했다.
도제양성과 역경이 종단 차원에서 진행된 불사였다면 통합종단이 내세운 포교 사업은 몇몇 원력 있는 스님들과 전국신도회를 비롯해 대불련, 대불청 등 신도단체들이 중심이 된 활동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부족한 예산에다 포교에 대한 기본적인 로드맵조차 갖추지 못한 탓에 통합종단 초기의 포교 사업은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지적이 많았다.
그러나 1994년 개혁종단 출범과 함께 1995년 1월 별원으로 승격된 포교원은 ‘한국불교 중흥을 위한 포교 청사진’을 수립, 1996년 ‘불교청소년의 해’를 시작으로 1997년 ‘전법의 해’, 1998년 ‘신도교육의 해’ 등으로 지정, 활발한 포교 사업을 전개했다. 또 1995년 포교사 고시를 시행, 포교사 육성에 나섰으며 청소년 포교를 전담할 ‘파라미타’를 조직, 계층별 포교전략을 수립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1995년 이후부터 2000년까지 총 18억 원의 예산을 책정해 군법당 건립에 나서면서 군포교의 활성화를 위한 밑거름이 됐다.
통합종단은 불교 자주화와 교단의 민주화에도 크게 기여했다. 특히 1994년 출재가가 중심이 돼 진행한 종단 개혁은 그 동안 정권에 예속된 잘못된 관행을 청산하고 종단의 자주성을 회복하는 초석이 됐다. 또 총무원장에게 집중된 권력을 분산하도록 겸직금지 조항을 마련했을 뿐 아니라 총무원장과 교구본사 주지, 중앙종회의원 등을 선거를 통해 선출하도록 함에 따라 교단의 민주화를 실현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1994년 종단 개혁 이후 기독교계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던 복지사업에도 뛰어들었고, 교계 NGO 단체 육성에도 앞장서는 등 대사회적 참여에도 남다른 성과를 내기도 했다. 그러나 이 같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통합종단 50년사는 종권을 둘러싼 끊임없는 대립과 갈등의 역사였고, 종단 개혁 이후 도입된 선거제도로 인해 승가의 위계질서가 훼손되고, 이로 인한 부작용이 여전히 잠재돼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권오영 기자 oyemc@beopbo.com
- ③통합종단 평가와 과제 - 끝
- 불교자주화·현대화 첫발 종권 갈등의 오점도 남겨
- 2012.04.23 14:46 입력권오영 기자 oyemc@beopbo.com 발행호수 : 1143 호 / 발행일 : 2012-04-25
임기마친 원장 3명에 불과
선거제도 여전히 갈등요소
새로운 미래 열기 위해서는
교육·포교·역경 매진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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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출범한 통합종단 대한불교조계종은 이후 반세기동안 비약적인 성장을 이뤘다. 일제강점기 단절된 한국불교의 정통성을 계승했고, 권력예속화에서 벗어나 불교자주화의 첫발을 내디뎠다. 또 주먹구구식 종무행정에서 벗어나 총무원과 교육·포교원 등 3원을 설립, 행정과 교육, 포교 등에 대한 전문화된 시스템을 구축했고, 1965년 1276만여 원에 불과하던 종단 예산은 50년이 지난 2012년 221억 5667만여 원으로 1700배가 넘게 증가했다.
그러나 이런 성과에도 불구하고 통합종단 50년사의 이면에는 오점도 적지 않다. 종권을 둘러싸고 갈등과 분규가 잇따랐던 것도 사실이다.
1954년 이승만 대통령의 유시로 본격화된 비구·대처승간의 갈등이 1970년 대처승 측에서 태고종을 창종하면서 마무리됐지만 그것은 또 다른 갈등의 시작이었다. 불교 내부에 잠재돼 있던 근본적인 모순을 해결하지 않고 출범했던 통합종단은 이후 종정과 총무원장, 문중과 문중 등 갈등과 분쟁이 주기적으로 되풀이됐다. 통합종단 이후 현재까지 총33대 총무원장에 이르고 있지만 평균 재임기간이 1년 6개월에 불과하고, 종헌에 보장된 임기 4년을 채운 총무원장이 3명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조계종 내부 갈등이 심각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종권을 둘러싼 내부 갈등은 1994년 종단 개혁 이후에도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1994년 종단 개혁은 당시 총무원장의 3선 저지와 정치권력과의 유착, 특정계층의 종권 장악 등 불교계 내부에 깊숙이 고착화된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출재가가 함께 이룩한 성과였다. 이를 통해 조계종은 행정과 교육, 포교 등 전반에 걸쳐 획기적인 변화를 일궜다. 특히 종권이 특정인에게 집중되는 문제를 해결했고, 선거제도를 도입해 종단 운영의 민주화를 실현하기도 했다. 그러나 제도 개혁만으로 내부갈등을 완전히 해소할 수는 없었다. 1998년 조계종은 종단개혁 4년 만에 또 다시 거센 갈등에 휩싸인 것이다. 1994년 종단 개혁으로 총무원장에 취임했던 당사자의 3선 강행과 이를 막으려는 종정 스님 측의 대립이었다. 양측은 각각 승려대회를 열어 자신들의 정당성을 내세우는가하면 사회법에 기대 고소 고발을 강행했다. 급기야 총무원 청사에 공권력이 투입되면서 폭력이 발생, 유혈사태로까지 번지기도 했다.
이처럼 반복돼오던 종단 내부의 대립과 갈등은 2000년대 이후 크게 완화됐다. 특히 1994년 종단개혁으로 시행된 각종 제도가 점차 정착되고 종단 내부에서 출재가를 중심으로 자성과 쇄신 노력이 확산되면서 종단은 점차 안정을 이뤘다. 그러나 이런 표면적인 변화에도 불구하고 종단 내부에서는 여전히 권력 지향에 따른 내부적 갈등 요소가 잠재돼 있다는 시각이 적지 않다. 총무원장을 비롯해 교구본사주지, 중앙종회의원 등 소임을 놓고 치열한 물밑 경쟁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종단의 민주적 운영을 위해 도입한 선거제도는 오히려 그 취지가 왜곡되면서 종단 내부의 편 가르기와 승단의 세속화를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돈으로 표를 매수하거나 선거 후 갈등의 골이 깊어지는 후유증을 낳고 있기도 하다.
이런 가운데 조계종이 세간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선 통합종단이 3대 지표로 내세웠던 도제양성, 포교, 역경에서 그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견해가 많다. 이 같은 3대 지표는 완결형이 아니라 끊임없이 재해석돼야 할 조계종의 실천이념이라는 것이다. 우선 도제양성과 관련해서도 단순히 불교교학을 익히고 외우고 음미하는 방법에서 탈피해 현대사회와 소통할 수 있는 인재 양성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많다. 이를 위해 수행체계의 정립과 동시에 다양한 학문을 수용할 수 있는 교육제도 개편이 절실한 과제이다. 또 포교에 있어서도 한 사람의 불교신자를 늘리는데 중점을 두기 보다는 복지 사업 확대 등 불교의 대사회적 역할 확대 등에 중점을 둬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단순히 신도수를 늘리는데 목적을 두기 보다는 연기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적극적인 사회적 자비를 실천할 때 사회적으로 친불교적 이미지가 확대될 수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부처님 가르침을 현대에 맞는 언어로 재보급하는 21세기 역경사업 역시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부분이기도 하다.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은 지난 4월10일 통합종단 출범 50주년 기념법회에서 “지난 50년이라는 역사의 거울은 지나온 모습 뿐 아니라 앞으로 시대와 사회의 요청에 어떻게 부응할 것인지를 비춰주고 있다”며 “통합종단 출범 50년의 의미를 되짚는 것은 앞으로 국민의 종교로 거듭나고 뭇생명의 안락과 행복을 현대적으로 실천하고자 하는 종단의 의지”라고 강조했다.
권오영 기자 oyemc@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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